한빛예술단의 <Music in the dark : Rubato> 관람후기

앙상블에서 빠른 패시지를 소화하지 못하는 후배에게 한 선배가 말했다.
“외워서 해”
아니 교향곡을 어떻게(미친거야?)… 라며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후배를 보며 선배는 다시 말한다.
“나도 안되는줄 알았는데 군대가보니 되더라… 맞으면 다 외워진다?”

그냥 어려운 기교를 소화못하는 단원들에게 지휘자가 말한다.
“외워라. 기교 부족은 재능부족이 아니라 연습부족이다.”

오늘 시각장애인 예술단체인 한빛예술단의 특별한 연주회를 다녀왔다.
이 연주회를 예매하게 된 계기는 원픽 성악가인 베이스바리톤 길병민님이 특별출연하기 때문이었다.

예매하고 나서는 외우면 진짜 다 되는가가 뻥이 아닌지 확인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 악보가 없기 때문에 같은 곡이라도 암보를 하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익혀야 하셨을 것이다.

오늘의 프로그램

다같이 하는 연주라면 지휘자가 꼭 필요하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해석의 통일이 필요하고, 앉은 자리에 따라 소리가 도달하는 속도가 미묘하게 달라 그냥 서로 듣고만 연주하면 소리가 뒤엉켜 엉망이 되기쉽다.
그렇기에 루바토와 같이 미묘한 표현을 수십명의 사람이 하나로 연주함은 지휘자 없이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오늘 연주의 주제는 “루바토rubato”
악보 표시를 뛰어넘어 고유의 템포를 가져도 된다는 것이나, 악상의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되기에 그 미묘한 선에서 예술성의 정수를 느끼게 된다.
지휘자를 볼 수 없는 분들이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 주제의 연주를 해내실지도 궁금해졌다.

무대는 크게 네 파트로, 첫번째 파트는 브라스 앙상블의 <라이온킹 모음곡>, <바바예투>, <산체스의 아이들>이었다.
브라스 앙상블에서의 지휘자는 바로 드럼!
전체적으로 다함께 익힌 음악을 드럼 리듬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연주해주셨다.

두번째 파트는 프로젝트 밴드 무대로,
테너 박영필님, 보컬 김지호님의 <Perhaps Love>
보컬 김지호님의 <Home>
보컬 이아름님의 <Never Enough>가 연주되었다.
공통적으로 세분 다 음색이 너무나 맑고 고운 공통점이 있으셨고, 그 순수한 소리에서 오는 울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막힌소리를 내는 테너는 취향이 아니어서 박영필선생님의 맑고 시원한 연주가 참 좋았다.

세번째와 네번째 무대의 일부는 바로 국가대표 성악가! 애정하는 베이스바리톤 길병민님의 특별출연 무대였다.
먼저 피아니스트 이재혁 선생님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열정’ 중 3악장>을 연주해주셨는데 시각의 한계를 극복해낸 연주가 온갖 고통을 이겨내야했던 베토벤의 치열했던 음악인생과 맞물려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관악기나 바이올린처럼 작은 악기에 비해 신체 가동범위가 넓은 피아노나 큰 현악기는 시각을 잃으면 더 다루기 어려웠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잡아내신 이재혁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혁 선생님의 독주가 끝나고 길님이 선생님 반주에 맞춰 <첫사랑>을 연주해주셨다.
오늘 진행을 맡아주신 장일범 선생님이 말씀해주시기를 이 곡은 작곡가이신 김효근 선생님이 대학때 사랑하던 분께 고백하려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효근 선생님은 그 어렵다는 첫사랑과의 결혼에 성공하셨다고🥰
지난 봄 길님 리사이틀에 이어 다시 롯콘에서 듣게된 첫사랑인데, 이 이야기를 듣고 들으니 안그래도 설레는 길님 첫사랑 연주가 어쩐지 더 다정하다☺️💙

4부 무대에서는 한빛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카르멘 서곡>에 이어 길님이 <투우사의 노래> 아리아를 연주해주신다.
일단 오케스트라가 카르멘 서곡의 빠른 패시지를 정확하고 훌륭하게 달려주셔서 놀랐고, 길님 아리아는 콘서트에서만 듣기 너무나 아까웠다😭
이렇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아리아를 오페라 무대에서 보고싶습니다🙏

이어지는 곡은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 중 4악장>과 <비제 아를의 연인 모음곡 2번>
많은 연주자가 시각정보 없이 숨소리와 서로의 몸짓에 변하는 공기의 흐름에까지 의지해 완성해낸 합주는 특히나 밸런스가 남달랐다.

앙코르는 마이클잭슨의 <Heal the world>를 전 출연자가 함께했고, 출연진이 가이드분들을 따라 무대를 완전히 나갈때까지 박수로 화답해주시는 관객분들까지 참 아름다웠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완성된 감동적인 밤이었고, 안되면 일단 외우자는 깨달음도 얻었다.